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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 - 목장

오늘 - 목장


 

뉴먼

                 野老安閑官老榮   
                 야로안한관로영    시골 노인은 한가하고 늙은 관리는 영화로워
                 山亭幽靜水亭淸   
                 산정유정수정청    산속 정자는 고요하고 물위 정자는 맑도다.
                 川流요嶽魚熊具   
                 천류요악어웅구    냇물은 흘러 산을 두르고, 물 속에 온갖 물고기 있고
                 林下休官錢鶴幷   
                 림하휴관전학병    숲 아래 퇴직한 관리에게는 여유와 한가함이 다 있다네.
                 卄載長思昔年契   
                 입재장사석년계    이십 년 동안 길이 오랜 친구 생각하다가
                 一樽相對此時情   
                 일준상대차시정    한 동이 술로 서로 마주 바라보니, 이때가 정겨워라.
                 羈종多病嫌登眺   
                 기종다병혐등조    얽매여 산 인생 병도 많아져, 정자에 오르는 것도 힘부치네,
                 夜月朝雲恨未平
                 야월조운한미평    밤에 달보거나, 아침에 구름 보면 한이 남아 마음 편치않쿠나..
                             野老亭    ---   李 元翼(이원익)
         
   

           목장 (The Pasture)    ---   Robert Frost
       
           샘물 청소를 하러 나가련다.
              I'm going out to clean the pasture spring;
           갈퀴로 나뭇잎들을 건져 올리기만 하면 돼.
              I'll only stop to rake the leaves away
           (그리고 물이 맑아지는 걸 보고 있게 되겠지.)
             (And wait to watch the water clear, I may):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 너도 가자.
             I sha'n't be gone long.--You come too.
             
                   
           작은 송아지를 데리러 나가련다.
             I'm going out to fetch the little calf
           어미 옆에 서 있는 어린 녀석인데
             That's standing by the mother. It's so young,
           어미가 혀로 핥으면 비틀거린단다.
             It totters when she licks it with her tongue.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 너도 가자.
             I sha'n't be gone long.--You come too.
    
  


             1월 29일 [오늘]
      
  1634년  (조선 인조 12)  임진왜란의 3인 가운데 1인인 오리 이원익 세상 떠남
  1860년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 출생    Anton Pavlovich Chekhov
  1886년  프랑스 작가 로망 롤랑 태어남    Romain  Rolland
  1893년  (조선 고종 30)  북한산성 수리
  1905년  미국 화가 버넷 뉴먼 태어남  Barnett  Newman
  1950년  국보  청평사 불탐
  1963년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사망 Robert Lee Frost
  1964년  미국, 인공위성 새턴 1호 발사 성공
  1966년  택시요금 100% 인상, 기본요금 50원 500m에 10원
  1977년  광주 국립박물관 설립 인가
  1992년  미야자와 일본수상, 참의원 연설에서 정신대 문제 언급
             일본의회에서 처음으로 "마음 속의 깊은 사과와 반성을 한다"고 발언
  1992년  한국-우즈베키스탄, 국교 수립 
  1998년  한민족불교교류추진 미주불교협의회 발족. 고문 이숭산 오법안, 회장 김도안
  2001년  박지은, 미국LPGA 오피스데포골프대회에서 우승 
  2004년  서울고등법원, 새만금 방조제 공사 집행정지 결정 취소 
              
                    
   無爲야말로 正에 이르는 길이다.
   근본을 바르게 하는 바는 각자 다르게 행한다.
   무위로써 근본에 맞서고, 구하지 않음으로써 올바름에 맞선다.
   무위로써 무위에 상대한다. 떳떳하지 않음으로써 도를 상대한다.
   (능히)없고 있게 함으로써 또한 없고 있음에 맞서고,
   또한 없게 하고 있게 하는 근본과 없게 하고 있게 하는 올바름이 가진 바가 없게 된다.
   해설
   사물의근본이 올바름이라면 모든 것은 근본으로부터 비롯되므로 올바라야 한다.
   그러나 이미 근본으로부터 멀어져서 바르지 않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으니 이는 잘못이다.
   근본이 올바르다면 나타난 세계도 올바라야 한다.
   그러나 근본 세계인 주체(能)와 나타내어진 세계인 객체(所)가 서로 완전히 같지는 않다.
   마치 뿌리와 가지와 잎, 꽃과 열매가 근본은 같으나
   각각 나타난 모습이 다른 것처럼 같으면서도 같지 않고, 같지 않으면서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관계라고 할 것이다. 이른바 불이(不二)의 관계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나타내고 나타내어진 것과의 사이에 둘이 아닌 관계에 있다.
   이것이 또한 연기의 도리이다.
   다시 말하면 뿌리가 바르고 나타난 모습도 바른데 그 작용은 각각 다르다.
   나타난 모습은 같으나 작용은 다른 것이다.
   또한 작용은 같으나 모습은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사물이 있기까지는 수많은 인연이 모여야 하고,
   원인과 결과는 어느 것이나 무자성(無自性)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근본으로서의 올바름은 어떤 성격을 가질까.
   첫째로 무위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무위는 사심 없이 행한다는 뜻이요,
   무심히 마음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함이 있으면 그로 인해서 무한한 능력이 제한을 받아 근본능력이 발휘되지 않는다.
   무한한 가능성은 함이 없는 무심의 상태에서 나타난다.
   어떠한 것에 마음이 걸려 있으면 함이 생겨 생사의 한계를 가진다.
   태어나면 함이 있는 것이므로 반드시 죽음이 따른다.
   그러므로 함이 있는 세계가 현실세계라면 무위의 세계는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세계이다.
   그래서 근본진리는 불생불멸이지만 생멸의 세계가 나타난다.
   나타난 세계는 함이 있는 세계요, 근본진리의 세계는 무위의 세계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올바름으로 나타난 것을 '함이 없다.'고 했는가.
   '무위로써 근본에 맞선다.'는, 나타난 올바른 세계에 함이 없으니,
   이러한 무위로써 근본인 올바름에 상대한다는 뜻이다. 근본은 함이 없는 세계다.
   함이 없는 올바름이다. 그러므로 근본으로부터 나타난 세계도 함이 없는 올바름이다.
   즉 연기의 도리이다. 무위로부터 무위의 세계가 전개된다.
   되어진 세계를 함이 있는 유위라고도 하나 유위 속에 무위가 있다.
   유위에서 유위를 떠나 무위를 증득하는 것이 도이다.
   우리의 몸도 무상함 속에 영원이 있다. 무상함 속에서 상(常)을 보고
   유위법(有爲法) 속에서 무위법(無爲法)을 보는 사람은 법을 본 사람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무위로써 근본이 되는 무위에 상대한다고 했다. 이것이 연기의 도리이다
   또한 되어진 세계인 올바름의 존재들은 떳떳하지 못한 무상한 존재이다.
   생과 멸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무상함 역시 근본인 도가 무상하기 때문이다.
   근본이 무상이므로 나타난 세계도 무상일 수밖에 없다. 무상은 모든 존재의 실상이다.
   근본자성이 무상이다. 절대불변하는 실체란 있을 수 없다.
   붓다는 이를 가리켜 무아(無我)라고 하셨다. 무아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무상하다.
   근본인 올바름도 무상하므로 떳떳하지 않은 올바름으로 나타난다. 정법(正法)도 있을 수 없다.
   올바르다거나 올바르지 않다는 모든 법도 절대불변하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법은 무아이며 무상이다. 무상한 것은 무상한 것으로부터 나타난다.
   이것도 인연의 법이다.
   또한 능히 있고 없게 하는 근본이 이 세상의 만물을 있게도 하고 없게도 한다.
   모든 존제가 있다가 없어지는 까닭은 그의 근본에 있고 없게 하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있고 없는 것은 생과 사의 되풀이다. 생과 멸의 법이요, 윤회의 법이다.
   이런 것도 인과의 관계를 떠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근본이 되는 올바름은 아무것도 가진 바가 없다.
   어디에도 끌리지 않는 세계이며, 아무것도 갖지 않았기에 무한량하게 가졌고,
   그 무한량한 것은 또한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무일물(無一物)이 무진장이요, 무진장이 무일물이다.
   무일물이 근본의 올바름이요, 무진장이 나타난 올바름이다.
   무일물이 무위요, 무진장도 무위다. 무일물인 하나의 도에서 수많은 무상한 존재를 창도해낸다.
   무진장한 창조물은 하나의 도일 뿐이므로 단 하나의 물건도 없다. 정도는 무위정도(無爲正道)다.
            
   올바름은 고요하다.
   정각(定覺)은 몸을 받는다. 이와 같이 법과 도를 설(說)함은 법의 정(定)을 말한다.
   도를 설한다는 것은 곧 따르는 인연을 설하여 도를 얻는 것이다.
   음의 받음을 본다는 것은 오음을 받는 것이고, 들어갔다는 것은 오음 중에 들어가는 것이고,
   생사음(生死陰)이 있다는 것은 정(正)을 받는다는 것이다.
   정이란 도가 스스로 올바르게 되는 것이니, 단지 마땅히 마음의 올바름일 뿐이다.
   해설
   고요한 마음속에 얻어지는 깨달음에는
   맑은 거울에 만물의 영상이 있는 그대로 보이듯이 일체의 사물이 그대로 나타난다.
   사물인 법이 고요함과 만나 고요함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주와 객이 만나서 하나가 된 것이기도 하다.
   이런 뜻에서 '정각은 몸을 받는다.'고 했다.
   깨달음은 고요한 정(定)속에 있다. 정(正)과 각(覺)은 같다.
   깨달음의 지혜는 마음의 적정으로부터 나타난다.
   따라서 법과 도를 떠날 수 없으니 법과 도를 있는 그대로 말하면 법이 곧 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법과 정은 고요한 주관이니, 주관과 개관이 하나가 된 것이 도이다.
   주객이 하나가 되어 주관은 주관대로, 객관은 객관대로 인연에 따라서 작용하므로,
   이것이 또한 도를 얻음이다.
   주체는 객체가 있어야 하고 객체는 주체가 있어야 존재한다.
   그러므로 주체와 객체가 인연관계에서 만나 깨달음이 있다.
   이것과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니, 곧 인연에 따라서 깨달음이라는 도가 있다.
   깨달은 사람은 오음을 거부하지 않는다.
   색, 수, 상, 행, 식의 오음은 번뇌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깨달음의 근원도 된다.
   오온은 모두 공(五蘊皆空)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것이요,
   받아들인다고 함은 공으로 들어오는 동시에 오음 중으로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오음은 공의 세계로 들어오기도 하고 공이 오음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정(定)은 일체를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세계이다. 이것이 관(觀)이다.
   받아들여진 것이 집착을 떠난다면 청정이요 각(覺)이다.
   그러므로 정각(定覺)은 '정과 각'이라는 뜻도 되고 '정이 바로 각'이라는 뜻도 된다.
   정과 각은 서로 떠나지 않는다. 정은 각의 원인이고 각은 정의 결과이니 원인과 결과는 같다.
   '받아들이는 것'과 '들어가는 것'은 같다. 받아들이는 입아(入我)는 들어가는 아입(我入)이다.
   입아아입관(入我我入觀)은 내가 부처요, 부처가 나라는 깨달음의 세계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도와 성불이 이루어진다.
   생사음(生死陰)이란 오음이다. 오음은 생하고 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사음이 있음으로 해서 올바름이 있게 된다.
   생사음이 있기 때문에 팔정도(八正道)가 있고,
   죽음과 삶이 있기 때문에 생사가 없는 정도(正道)가 있다. 번뇌가 있기 때문에 깨달음이 있다.
   번뇌즉보라(煩惱卽菩提)가 바로 이런 뜻이다. 깨달음은 올바름이다.
   그래서 '정이란 도가 스스로 올바른 것이다.'고 했다.
   이와 같이 적정인 정과 깨달음과 생사의 음은 서로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지는 인연관계에 있다.
   오음을 떠나서는 깨달음이 없고, 적정도 있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고요히 받아들여 집착이 없고, 집착이 없는 고요함 속에
   깨달음이 스스로 나타나 올바른 법이 살아난다.
   이렇게 하여 깨달음 속에서 올바름을 얻으려면 먼저 심적정을 가져야 하는데,
   이는 숨이 올바르게 들어오고 나감에 있다고 한다.
   숨이 올바르게 들어온다는 것은 오음 중에 들어오는 것이요,
   숨의 나감은 오음 중에서 나가는 것이다.
   들어오고 나감이 오음을 인연으로 하여 올바르게 행해지면 곧 도이다.
   도는 올바름이라고 했다. 마음을 올바르게 쓰려면 마음이 적정 그대로인 정에 있어야 한다.
   올바른 마음은 정 그대로이니 깨달음 자체이다.
   붓다의 아나파나사티는    '마음의 올바름이요 고요함이요 청정한 각'  이라고 설했다.

 

이끼 -모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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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0 11:19 2008/05/2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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