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 금광리 장씨고택
분류 : 고가(古家)소장 : 장대성
시대 : 조선시대
지정연도 : 1991년 3월 25일
지정번호 : 경북문화재자료 제233호
소재지 :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1991년 3월 25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33호로 지정되었다. 인동장씨 장태득(張泰得:1741∼1792)의 고택(故宅)으로 영감댁이라고도 한다. 조선 헌종 때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인 장연구(張衍矩:1802∼1892)가 1860년경에 지은 건물이다.
인동장씨는 300여 년 전에 금광리(金光里) 마을에 입향했다. 조선(朝鮮) 세조(世祖) 때 적개공신(敵愾功臣) 장말손(張末孫)의 증손인 장수희(張壽禧:1516∼1586)가 화기리(花岐里)에서 분파되었고, 그의 아들 장여화(張汝華:1566∼1621)가 이곳에 터를 잡았다. 장연구는 장여화의 6세손 장태득의 손자이다.
금광리의 단산(壇山) 중턱에 있어 내성천(乃城川)이 내다보이는 곳에 동북향으로 자리잡았다. 왼쪽에는 가랑봉, 오른쪽에는 불로봉을 끼고 있다. 조선 후기 민가건축의 특징이 잘 보존된 □자 와가(瓦家)이다. 안대청만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다. 지붕은 사랑채만 팔작지붕이고 나머지는 안채와 양익사(兩翼舍) 순으로 단의 차이를 두어 맞배지붕으로 처리했다.
19세기 중반의 건축임에도 지형(地形)과 지세(地勢)에 맞게 가옥을 동북향(東北向)으로 안치(安置)하여 전통적인 배치법을 고수하고 있다. 안채의 대청 전후 주상과 들보에 놓인 제형판대공에도 첨차와 소로를 사용하고 있는 흔치 않은 예로 매우 돋보인다. 한편 안방, 건넌방, 사랑방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사랑마루방에도 반침(半寢)을 설치하는 등 다락장과 벽장 등 수장처가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는 실용성도 곁들이고 있어 주목된다.
안채는 두리기둥을 세운 3칸의 대청 오른쪽에 3통칸 안방, 왼쪽에 2통칸 상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방은 대청 쪽에 반침을 설치하고, 오른쪽 면의 아래칸에 벽장을 꾸몄다. 또 부엌의 부뚜막 위에는 벽장을, 상부에는 다락을 설치하여 안방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안방 앞의 큰 부엌 오른쪽에는 돌출한 고방 1칸, 왼쪽에 장광, 마구 각 1칸씩이 있다. 상방도 대청 쪽에 반침이 설치되어 있고, 상방 앞쪽에는 상방 부엌이 있다.
대문간 왼쪽의 사랑채는 자연석으로 쌓은 3단 기단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가운데 1칸 규모의 마루방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2칸 규모의 작은사랑이 상방 부엌과 연결되어 있고, 왼쪽은 1.5칸 규모의 큰사랑방이 있다. 마루방과 작은사랑방 앞에는 툇마루가 있고 그 앞으로 큰사랑방 앞까지, 마치 누마루처럼 헌함(軒檻)으로 연결되어 있다. 마루방의 천장은 고미반자로 꾸며져 있고 뒷벽에는 반침으로 되어 있다. 큰사랑방은 뒤벽 반칸은 반침이고, 나머지는 작은 외여닫이 세살문이 있는데 안채 옆마당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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